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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소식

신홍근의 공부 미락
작성자 신홍근 작성일 2011-10-08 10: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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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숙, 겸손과 양보로 나라가 흥하다
 
관중과 포숙은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다. 관중은 게을리 일하고도 장사가 끝나면 수입을 배나 챙겨갔다. 뿐만 아니라 일을 꾀하다가 여러 번 실패를 했고, 세 번 벼슬에 나갔으나 세 번 다 쫓겨났다. 전쟁에서 세 번을 도망쳤다. 사람들이 이런 관중을 비웃었다. 그러나 포숙은 “관중이 가난하니 돈이 더 필요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 실패하고 쫓겨난 것이며, 노모가 있어 도망한 것이며, 구차한 연명이 아니라 대의와 세상을 위해 작은 의리를 버린 것이다”라며 감싸주었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요, 나를 아는 이는 포숙이다”라고 했다. ‘관포지교’의 유래이다.

제양공은 문란하고 부덕하여 신하인 공손무지에게 죽음을 당하고 제양공의 두 아들은 망명을 갔다. 그때 관중은 첫째 공자 규를 가르쳤고, 포숙은 둘째 공자 소백을 가르쳤다. 공손무지 일당이 죽자 관중과 규, 포숙과 소백은 제나라로 돌아간다. 관중은 규를 위해 소백을 죽이려 활을 쏘았다. 소백은 허리띠 고리에 활을 맞고 거짓으로 죽은 체하며 쓰러진다. 규와 관중은 방심하여 천천히 가고 소백과 포숙은 밤낮을 달려 먼저 돌아와 군주자리에 오르니 바로 제환공이다.

제환공이 관중을 죽이고 포숙을 재상으로 삼으려 하자, 포숙은 사양하며 관중을 추천했다. 자신은 기꺼이 관중 아래에 있기를 원했다. 제환공도 포숙의 설득으로 원한을 털고 관중을 재상으로 받들었다. 이에 제나라는 크게 발전했고 제환공은 최초로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는 영광을 얻었다.

제환공의 덕과 넓은 그릇, 관중의 경륜과 지혜가 빛나는 것은 포숙의 겸손과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 밝게 처신함은 공부의 큰 근본이다.

                                                                                                                                                     평화한의원

                                                                                                                                                    원장 신홍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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